EGG

눈알도 알이다 라는 기분으로 적은 것이므로
아무래도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미안합니다
조각글의 집합같은 느낌으로 쓰고 싶었는데 살짝 실패했어요
세계관이 오래 묶은 세계관이라 저만 알고 있던 게 나오는데 최대한 설명은 하였습니다


Endure

ㅤ 때는 아침.

 
ㅤ "이 계란은 뭐예요?"

ㅤ "응?"

ㅤ 티아나가 검지 끝으로 다시 가리킨다. "이거요."
ㅤ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짧뚱한 잔, 그 위에 세로로 세워진 계란. 껍데기 색은 하얀색.

ㅤ "계란이잖아." 루드빅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티아나가 곧장 그야 보면 안다며 허탈해한다.

ㅤ "뭐야~? 달걀컵(Egg server)이잖아."

ㅤ "생각보다 훨씬 대놓고 지은 이름이네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외국 영화에서나 본 거 같은데."

ㅤ "일단 위쪽에서 약간 아래 옆면을 나이프로 쳐서⋯."

ㅤ 탁탁 소리가 몇 번 나고 계란의 정수리에 골고루 금이 간다. 나이프는 금이 난 곳에 찔러 넣어져, 캔을 따듯 계란을 열었다. 내용물은 부드러운 반숙. 동그란 형상. 노른자를 둘러싼 흰자. 그 위로 약간의 소금과 후추가 뿌려진다.

ㅤ "그러고 먹어요? 숟가락으로 파서?"

ㅤ "그래도 되고. 난 빵 찍어먹으려고 둔 거야."

ㅤ 황금빛으로 구워진 길쭉한 빵. 루드빅은 그것을 하나 손끝으로 골라 집어 계란 안에 쑤셔 넣는다. 빵에 골고루 묻어난 노란색은 윤기가 난다. 굵게 떨어지며 끈적한 모습.

ㅤ "그냥 구워서 먹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ㅤ "그릇이 너무 넓게 더러워지잖아. 얘 하나만 더러워지면 그만이니까." 빵으로 계란을 두드리더니, 입으로 가져간다. 바삭한 소리를 한 번 내고는 다시 들리지 않는다. 입을 꾹 닫고 씹는다. 티아나가 의아한 얼굴로 달걀컵을 바라보았다가, 도로 루드빅을 바라본다. 루드빅의 눈동자와 노른자의 색이 닮았다고 느낀다.

ㅤ "키위 먹는 느낌이네요."

ㅤ "오, 키위 놓기에도 좋겠네. 닮았잖아."

ㅤ 티아나는 루드빅과 비슷한 방법으로 계란을 열고는 작은 숟가락을 비스듬히 엎드리게 했다. 흰자와 껍데기 사이에 파고들고는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파내려 간다. 이어서는 숟가락 가득히 삶은 계란을 퍼올리고 그것을 바게트 위에 올렸다. 역시 소금과 후추. 조심스레 베어 물고 바스락바스락 먹는다. 긴 테이블 위 머리가 열린 삶은 계란이 두 알. 흰 그릇이 두 개. 베이컨과 구운 방울토마토. 빵이 담긴 바구니, 바스러진 양상추 더미—샐러드—, 나이프와 포크가 한 쌍씩. 냅킨. 대칭.

ㅤ "계란은 닭이 먹는 모이에 따라서 색이 변한대요."

ㅤ "신기하네. 어느 쪽? 껍데기?"

 
ㅤ "노른자요. 껍데기는 암탉의 털색을 따라가고요."

ㅤ 시답잖은 대화가 오고 가는 활발한 식탁.

ㅤ 식사가 끝난 뒤는 각자의 시간이다. 티아나는 간만의 휴가를 누리고 있다. 연차로는 사흘 정도 될 것이다. 주말과 공휴일이 겹쳐서 닷새 하고도 잘하면 하루 더 쉴 수 있다. 그걸 들은 루드빅이 그에게 어딘가 여행을 가잔 제안을 했지만, 그와 여행을 했을 때마다 티아나 자신이 식도락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번은 딱 잘라 거절했다. 따로 휴가 계획이 있기도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거절된 순간 루드빅은 뭐라 말하기 어려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티아나는 그저 그가 조금 놀랐을 뿐이라 여겼다.

ㅤ 티아나가 소파에 기대어 창밖을 보던 중에 구두가 땅을 치는 소리가 다가왔다. 루드빅이다.

ㅤ "어라? 나가세요?"

ㅤ "아, 얼마 전에 의뢰 상담이 하나 들어왔었는데, 오늘 오라고 하네. 급한가 봐. 당일 처리를 요구하면 좀 늦게 들어오려나⋯."

ㅤ 평소보다 단정한 차림새다. 티아나는 그가 중요한 고객이라도 만나는 것인가 생각한다. 루드빅은 구두 끝을 한참 어루만지고는 흠이 없음을 보고 만족했다.

ㅤ "몇 시쯤 들어오시는데요?"

ㅤ "몰라. 늦으면 연락할 거니까."

ㅤ "아⋯ 근데, 저 오후에 본가에 가려고 했어서요."

ㅤ 문고리를 잡으려던 그의 손이 멈췄다. 루드빅이 어깨너머를 보려는 듯이 살짝 뒤돌아 본다. 둘은 눈이 마주친다. 잠시 침묵이 자리 잡았다가, 루드빅이 입을 열었다.

ㅤ "⋯태워다 줘?"

ㅤ "음? 저녁까지 일할 수도 있다면서요?"

ㅤ "의뢰 시작 시간은 어느 정도 자유니까 말이야. 이번에 갈 사무소가 네 본가 가는 길 쪽에 있어. 대충 핑계 대고 갔다 오면 되거든."

ㅤ "아⋯."

ㅤ 그는 루드빅이 사무소까지 자기를 끌고 가려는 듯해서 대답을 머뭇 거린다. 그렇지만 이미 짐은 챙겨뒀었고, 딱히 지금 차림새에서 밖을 나가도 문제는 없어 보였기 때문에—그는 루드빅이 집에서 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놓고 편한 옷을 입을 사이는 아니니,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나갈 때와 다름없는 옷이었다.— 곧 고개를 끄덕인다. 차 트렁크에 짐을 실으면 몸은 편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한다. 루드빅이 살짝 웃는다.

ㅤ "짐 가져와. 실어줄게."

ㅤ 그런 말을 뒤로 루드빅은 현관문을 열어두고 차고 쪽으로 걸어갔다.

ㅤ 사무소에 도착한 시간은 맑고 화창한 오후. 둘은 가는 길 중간에 점심 식사를 하였다. 밖은 살기 좋은 온도였다. 반대로 사무소 안은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겉보기엔 높은 가벽이 빼곡한 카페 같다. 창문으로 맑은 빛이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주광색의 조명이 빼곡한 천장 때문에 일절 은혜는 받지 못한다. 넉넉한 공간과 반투명한 유리가 붙은 분리가벽. 소곤소곤한 듯 웅성거리는 듯 소란스러운 듯 각각 떠드는 소리. 공기정화기와 냉난방 시설의 소음. 불현듯 전화 소리. 누군가가 받고 살가운 척 목소리를 높인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협소한 가벽 안에서 의뢰인과 대화하는 루드빅과 경청이라는 침묵으로 일관 중인 티아나.

ㅤ "그래서——— 말씀하신 사항은 자택 근처 출현한 이계생물의 퇴치고⋯."

ㅤ 루드빅은 창백한 서류 몇 장을 마치 수십 장이라도 되는 듯 넘기고, 다시 넘기고, 도로 돌아왔다가, 또 넘기며 읽었다. 형식만 갖춘 경어가 그의 입에서 나온다. 목을 몇 번 가다듬고, 반가운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목소리. 티아나는 속으로 신선함을 느꼈다.

ㅤ "제안 의뢰비 50⋯ 너무 많아. 어르신, 이 정도 의뢰에는 40으로도 충분해요."

ㅤ "어머⋯ 정말요? 주변에 다들 그 정도 줬다길래⋯."

ㅤ "네에, 예전 얘기. 제가 또 싸게 받는 편이라."

ㅤ 책상에 놓여있던 값싼 볼펜으로 단호하게 의뢰비 영역에 두 줄이 그어지고, 약간 남아있는 빈칸에 가격이 새로 적힌다. 수려하지만 어딘가 약간 어색한 글씨체. 분명 아직 연습이 남아있는 글씨. 티아나는 은근슬쩍 머릿속에서 자기가 내야 했던 의뢰비를 예상한다. 단골이 된다고 해서 가격이 그렇게 내려가진 않겠지. 분명 수십 건은 될 텐데. 그 생각 잠시 사색이 되었다가, 대화에 다시 집중한다. 보통 의뢰는 두 명의 해결사가 처리하니, 50이라는 숫자에서 세금이라느니 뭐니 해서 떨어져 나가고 남은 돈을 반 씩 가진다면 그렇게 많진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자면 오히려 (두 명인 척을 하고) 혼자서 40을 부르는 루드빅 쪽이 더 비싸지만, 의뢰인 입장에선 둘이 하든 하나서 하든 원하는 결과물은 똑같다. 총액이 좀 더 싸고 잘하는 사람이 걸리면 그만이다.

ㅤ "금액은 수정했고, 오늘 작업은 시작할 건데— 계약금은 사무소에 할당하셨을 거고, 완료 보고를 받고 난 뒤는 사전에 받으신 쪽으로 결제하시면 됩니다."

ㅤ 외운 문장.

ㅤ "고마워라, 아이고, 아들 딸 같은데 너무 고맙네."

ㅤ "하하⋯." 루드빅이 거북하게 웃었다.

ㅤ "특히 청년 말이야, 내 아들이랑 눈이 꼭 닮아서, "

ㅤ 서류를 내려놓다가 붙잡히는 루드빅의 두 손, 뿌리치진 않고 느슨하게 의뢰인의 손에 잡혀있다. 티아나는 루드빅의 손보다도 의뢰인의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늙은 머리가 듬성하게 자란 검은 머리칼⋯. 고르게 퍼진 색을 보아 염색이었다. 적은 숱에 짧은 머리. 주황색인지 노란색인지 모를 눈동자에, 둥근 동공.

ㅤ "눈이 닮았다고요."

ㅤ 루드빅은 기계적으로 답했다.

ㅤ "맞아~. 밝은 노란색이었거든. 아휴 청년'은' 되게 곱게 생겼네. 우리 애는———"

ㅤ 노란 원 위 강렬하게 축소된 세로선.

ㅤ "그런 걸 뭐 하러 말해."

ㅤ 의뢰인이 다시 입을 떼려던 순간,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얘기만을 듣던 다른 중년이 한 마디 쏘았다. 의뢰인이 안 좋은 계약을 당할까 봐 따라온 태도다. 중년은 팔을 풀지 않고 엄지 하나로 손가락질하며 루드빅을 가리킨다.

ㅤ "눈 노란 거 말고는 닮은 곳이 하나도 없구먼. 어디 바람잡이 같이 생겨서는."

ㅤ 티아나는 이때 등에 소름이 돋았다.

ㅤ "아⋯ 아하하." 루드빅의 목소리가 달그락 거리다가 부드럽게 웃는다. 티아나가 약간 안도한다.

ㅤ 호소, 답변, 중재, 헐뜯음, 난색(難色), 어색한 웃음, 빙글빙글 도는 대화. 아들은 대학 다니던 중에 연락이 끊겼다, 꾸밀 줄을 모른다, 아들은 인물이 없다. 무슨 소리냐, 우리 애가 훨씬 낫다. 어디가 낫다는 거냐. 봐라, 얘는 키도 크고 날씬해서. 머리도 까만 게 관리도 못해서 부스스하니. 그건 네 머리를 닮아서 그런 거 아니냐. 쌍꺼풀도 없어선, 먹는 것도 이상해서, 입술은 너무 얇고, 우울한 얼굴에. 그만 좀 말해라. 다 너 닮아서, 의뢰 와놓고 무슨 소리냐. 미안해 청년, 엄청 곱게 생겼네, 이러는 거 알면 우리 애가 질투하겠어. 의뢰인들은 입술을 들썩대며 말했다.

ㅤ 루드빅은 저 둘의 이빨을 전부 뽑아버리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서 웃었다. 티아나는 눈을 굴리며 대화를 좇다, 슬쩍 손목시계를 본다. 루드빅이 곁눈질로 그를 바라보았다가 의뢰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다시 환하게 웃는다.

ㅤ "하하, 그러지 마시고, 저흰 시간이 되어서 슬슬 의뢰에 투입할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생태 조사가 필요해지면 오래 걸릴 수 있어서 빨리 시작하는 게 좋거든요."

ㅤ 능숙한 변명이다. 잡힌 두 손이 스르륵 빠져나오고 오른손만을 도로 내민다. 악수. 의뢰인은 그의 손을 동아줄이라도 잡는 것처럼 두 손으로 꼭 잡고는 손을 흔들었다. 잘 부탁드려요. 그리 말하고는 자리를 뜬다. 가벽 내에는 티아나와 루드빅만이 남았다. 의뢰인이 일어난 자리를 바라보는 그의 노란 눈동자는 감을 줄을 모르고 초침처럼 움직였다. 

 
ㅤ "⋯ ⋯." 

ㅤ "⋯저희도 출발할까요?"

ㅤ 공기를 깨고 들어오는 목소리.

ㅤ "⋯볼일 좀 보고 올 테니까, 서류 좀 가방에 넣어놓고, 차 앞에서 기다려."

ㅤ "에? ⋯아! 네. 갔다 오세요."

ㅤ 이젠 정말 부려먹네, 티아나는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어딘가 그의 표정이 나쁜 탓에 뭐라 불만스럽게 대할 순 없었다. 거북한 일이라 그러겠지. 딱히 사람을 좋아하시는 것도 아니잖아. 아들이랑 닮은 구석이 하나 있다고 그렇게까지. 그래도 나쁜 분들은 아닌 거 같았는데. 그러고 보니 루드빅 씨는 얼굴을 고쳤다고 하셨는데⋯. 대학교를 중퇴⋯ ⋯. 뭐람, 얼른 하자.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서류를 가방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ㅤ 티아나가 차 앞에서 기다린 지 10분 조금 지나자 루드빅이 멀리서 걸어온다. "기다렸지." 삑, 자동차의 잠금이 풀리는 소리. 티아나는 서류 가방을 든 채 조수석에 앉는다. 루드빅이 몇 번 기침을 한다. 티아나는 인위적인 박하향을 느꼈다. 안전벨트를 다 두를 때까지도 루드빅은 헛기침을 했다. 사무소에 있을 때보다 기침이 더 심하다. 약간 젖은 기침이다.

ㅤ "괜찮으세요?"

ㅤ "으음, 목이 불편해서."

ㅤ "⋯아는 분들은 아니죠?"

ㅤ 침묵. 루드빅의 고개는 움직이지 않는다.

ㅤ "모르는 사람이야. 아마도? 전에 의뢰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왜, 내가 그 아들을 알까 봐?"

ㅤ "아⋯ 아뇨, 그냥⋯."

ㅤ "아님 내가 그 못난 아들을 잡아먹기라도 했을까 봐?" 쇳소리 섞인 목소리. 루드빅은 다시 억지로 기침을 했다. "헤헤." 그의 웃음소리가 말끝보다 뒤늦었다.

ㅤ 차에 시동이 걸리며 내비게이션에 빛이 들어왔다. "주, 주소 찍을게요." 티아나는 다급한 손가락으로 주소를 입력한다. ■■길, ■■■번 ■■⋯. 분명 그가 이미 주소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성스럽게 적어 넣어준다. 그러든지 말든지, 루드빅은 자신의 턱 주변에서 차가움을 느꼈다. 묻어있는 물기를 몇 번 소매에 쓱 닦는다. 혀로 자기 치아 곳곳을 점검하듯 훑어보고, 또 얕은 기침을 한다. 티아나가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적는 동안 그 손목 아래로 루드빅의 팔이 교차하며 기어를 잡는다.

ㅤ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ㅤ "⋯사과하라고 한 적은 없어."

ㅤ 안내를 시작합니다, 상냥한 말투로 내비게이션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도로 재생한다. 그것을 신호로 루드빅은 액셀을 살근 밟는다. 핸들이 꺾이고 그에 따라 차가 몸부림치는 대로, 우레탄 바닥은 마찰력에 응답하여 괴성을 낸다.

ㅤ 차 속은 조용했다. 티아나의 눈에 비친 루드빅은 어쩐지 힘이 빠진 모습이었다. 배가 고파 보인다.

 


Grudge

 
#1
 
ㅤ 티아나를 그의 집으로 데려다주고, 곧장 일터로 복귀한 루드빅은 누가 뭐라 할 수 없을 수준으로 의뢰를 마쳤다. 목표물을 찾느라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좋은 사냥꾼이고, 어쨌든 오늘 끝냈다면 그만이다. 그가 좋은 식사라도 한 듯한 멍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숲에서 걸어 나오자, 의뢰인이 환하게 반겨줬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의뢰인이 그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싶단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괜찮다며 거절하곤 그 의뢰인과는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선물이라며 퇴치한 이계생물의 머리를 건네었다. 의뢰인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그 머리통을 떨궈 놓고는, 두 중년이 당황하는 소리를 무시하고 곧장 그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온기가 없는 넓은 집. 

ㅤ 그가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본인을 한참 바라본다. 티아나는 루드빅의 집에 거울이 너무 드물게 있다고 나무랐다. 어찌어찌 차려입어도 꼴을 알려면 방에서 나와 다른 방까지 갔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욕실과 화장실에 있는 거울도 당최 충분한 크기가 아니었다. 루드빅의 방에는 거울이 없다. 눈 뜨자마자 자기 얼굴을 보게 되는데 이상하지 않냐면서. 옷방에 있는 거울은 옷장 중 하나를 열면 나타났으나, 폭은 한 뼘 반. 티아나는 그 거울로 종아리부터 정수리까지 겨우 다 볼 수 있었지만, 루드빅을 기준으로 한다면 반드시 얼굴 중앙쯤을 끊어 먹는 길이의 옹색한 거울이었다. 적절한 거울이 없는 이유를 물을 때마다, 그는 시원찮은 반응을 보였기에 결국 티아나는 본인 방에 따로 거울을 구비해 뒀다. 

ㅤ 루드빅은 세면대 거울에 가까이 다가가, 아직 젖은 손으로 자기 눈꺼풀을 까뒤집어 거울과 눈을 바라보았다. 눈동자는 맑은 노란색이다. 흰자는 충혈이나 점 같은 것 없이 하얗다. 결막도 건강한 분홍색이다. 그러나 어딘가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그는 계속 바라본다. 바라보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그만 손톱 끝이 눈알을 건드려버렸다. 그는 소리 없이 입만 벙끗 열었다가, 치아 사이로 숨을 들이마신다. 손을 급하게 뗀다. 오른눈을 질끈 감으니 자기 눈물에 속눈썹이 젖는 것을 느꼈다. 그러곤 괜히 신경질에 자기 머리끝을 헝클어뜨리고, 씻어야겠다, 그리 생각한다.

ㅤ 그는 머리가 물에 젖은 꼴로 나와서도 저녁 식사가 고민이었다. 뭐가 좋을까. 지금 걘 가족들하고 먹고 있겠지. 좋네~. 슬리퍼를 끌고 그는 주방 싱크대에 등을 기댄다. 냉장고 소리가 음산하게 공간을 메우고 있다. 루드빅은 주방에서 거실 쪽을 바라보다가, 냉장고로 향한다. 계란을 빨리 처리해야한다. 저녁 메뉴가 정해졌다. 파스타. 노른자와 딱딱한 치즈를 섞은 소스로 맛을 내는 쪽으로. 그는 면을 삶으며 계란을 깼다. 투명한 유리그릇에 노른자가 담기고, 그 후에 차례차례 재료가 섞인다. 프라이팬에 잘게 썰린 염장된 돼지고기가 볶아진다. 검은 촉수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한 번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어째 섞이고, 볶아지고, 끓고 있는 것들을 내려다보면서도 즐겁거나 기대되거나 하지 않았다. 낯선 기분은 아니었다. 간만에 느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기분이 된 원인이 여기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내심 알고 있었지만, 메뉴를 잘못 선택했나, 그렇게 생각하였다. 

 
ㅤ 맛은 만족스러웠다. 그는 식사를 마치고 싱크대에 아침 식사 후 남은 것들이나, 조금 전 요리하며 생긴 쓰레기를 디스포저에 처리하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싱크대의 배수구가 거름망 하나로 막은 시커먼 입을 벌리고 가운데 자리에 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의 왼쪽 바닥을 향해 그것들을 떨궈버렸다. 곧 시커먼 목구멍과도 같은 것이 솟아올라 그 부산물을 집어삼킨다. 편리하다. 손 젖을 일 없고 편하다. 이렇게 남은 것들을 먹어버린다면 나는 남은 것들로도 변하게 되는 걸까? 노른자는 모이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색이 달라진댔지…. 그는 문득 생각했다가, 먹는 것에 따라 육체나 부산물이 변한다니, 그건 '모든 생물'이 똑같잖아. 오우, 이런 어휘는 걔한테서 옮은 것 같아. 그러곤 멈췄다. 
 
ㅤ 밖에서 벌레 우는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내다보면 완전히 어둠이다. 조금 멀리 있는 곳에 있는 산책로의 가로등 정도가 그나마 길을 밝힌다. 겨울에 해가 더 짧아지기 전에 조명을 더 설치할까. 밤에 오는 길이 무섭겠어. 추워서인지 무서워서인지 모르게 달달 떠는 모습도 조금 보고 싶은걸…. 그가 짓궂은 생각을 하면서 침대에 몸을 뉜다. 그렇게 하루를 저물게 하였다.


#2

 
ㅤ 티아나가 본가로 가기 며칠 전, 루드빅에게는 한 의뢰가 들어왔었다.

지급비 7 / 2시간 진행 / 변신 관련 이능력 소유자 환영 /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의 고유 종교인 마히카교의 대표적인 기념일 '재성절(再聖節)'을 기반으로 한 이벤트 진행. '재성절'은 신 중 하나인 '아흐라'가 악귀 '라크샤'를 물리쳐 다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 날을 기념하는 날로… ….'
… …
… 라크샤로 변장해서…
… … … … 보육원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시고 … …
… … 저희 보육원은 … … 성탄절 … … 탄신일 등 다양한 … 존중 …  

ㅤ 이런 걸 나한테 준 사무소는 뭐지. 루드빅은 노트북에 띄운 의뢰서를 읽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잠깐, 티아나를 데려가면 좋겠는데. 걘 애들을 껄끄러워하지도 않을 거고. 어쩌면 변할 모습에 조언을 얻을 수도 있겠지. 어차피 여행도 거절됐고. 그런 생각을 하며 미리 의뢰를 수락했으나, 알다시피 계획이 틀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도로 거절하고 싶어도, 그런 짓을 해버리면 나중에 의뢰받기가 어려워진다. 꼴랑 이 사람 하나만 자기한테 실망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루드빅은 그런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원래라면 한가로울 오후 시간에 의뢰를 준 보육원으로 향했다.
 
ㅤ 보육원 선생 중 하나가 루드빅을 맞이한다. "그 해결사 분…이시죠?"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온다. 루드빅은 어깨를 한 번 으쓱 올렸다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악수. 루드빅은 악수하는 상대방의 손에 힘이 영 없어서 기분이 언짢았지만 티 내지 않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서 그 선생은 루드빅을 한 번 더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ㅤ "뭔가 문제라도…."
 
ㅤ "아, 아뇨." 아무리 보아도 이런 일을 맡을 거 같지 않은 사람이 온 거 같다는 속마음을 숨기는 모습이다.
 
ㅤ 루드빅은 보육원 안 교무실 구석 쪽으로 안내를 받았다. 다리가 네 개 달린 스툴. 루드빅이 앉자 묘하게 앞뒤로 달캉 거린다. 그는 무표정하게 스툴을 흔들의자처럼 까딱거리며 선생들을 기다린다. 5분 정도 기다렸나 싶을 때쯤에 어른 두 명이 루드빅 쪽으로 목례를 보낸다. 한 명은 앞치마를 둘렀고, 한 명은 청바지를 입고 있다. 루드빅이 고개를 까딱 움직여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런 인사치레가 끝나고 곧장 질문이 들어온다. "뭐 하러 오셨는지 아시죠~." 앞치마를 두른 쪽이 애굣살만 실컷 올려 웃으며 말했다.
 
ㅤ "라크샤…였던가. 그거 역할을 맡아달라고…."
 
ㅤ "네 맞아요~. 혹시 관련해서 지식이 있으실까요~?"
 
ㅤ 없다. 그러나 단호하게 잘라 말하면 알아보지도 않고 온 거냔 눈을 할 것이다. 그렇게 낯선 종교도 아니었다. 루드빅은 양 입꼬리만 살짝 올려 웃으며 말한다. "어느 정도 외형은 알아보고 왔는데…. 자세한 신화는 모르네요."
 
ㅤ "그러실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또 종교가 자유롭다 보니까 많이 섞여 있어서… … … … 라… …였으니까…."
 
ㅤ "아~. 네."
 
ㅤ "…… 고, ……라서…." 루드빅은 필요 없는 대화를 반쯤 흘려듣고 있다. 억지로 웃으면서 이해한다는 듯이 떠벌떠벌 말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거슬린다.
 
ㅤ "일단 중요한 건… 라크샤가 조금 복잡한 모습이신 거 아시죠~." 앞치마를 입은 쪽이 잠시 웃는 것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두들긴다. 한참을 뒤적거린 후에 스마트폰을 루드빅에게 들이밀며 다시 눈만 한껏 반달로 만든 웃음으로 이야기를 잇는다. 화면에는 특이한 그림이 있다. 라크샤다. 인간처럼 이족보행 하는 신체 구조, 염소의 발굽, 매의 발 같은 손이 두 쌍, 깃털로 뒤덮인 몸에, 사람과 새 중간쯤의 기묘한 머리통. 꼬리는 없고, 망토처럼 늘어뜨린 날개가 있다. 눈은 마치 카멜레온의 눈꺼풀을 벗겨버리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크고 기괴하다. 루드빅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마디 했다.
 
ㅤ "이런 걸 어린이한테."
 
ㅤ 청바지를 입은 선생이 이마를 짚었다.
 
ㅤ 그러고는 셋의 고군분투였다. 루드빅이 처음 변신한 형태가 '어린아이들의 정서에 안 좋을 정도로 공포'스러웠기 때문에, 두 선생은 계속해서 '컨펌'했다. 그중엔 조금만 더 가짜같이 변할 순 없냔 요구도 있었지만, 루드빅은 에둘러 말하듯 안 된다고 했다. "직접 본 것들을 기준으로 밖에 못 변해서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수많은 요구에 표정이 안 좋아진 루드빅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얼굴이 거의 남지 않은 형태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안심할 만한 형태로 변했지만, 역시 어른에게도 조금 무서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화난 듯 털을 잔뜩 부풀린 닭과 같은 머리, 조류의 비늘 같은 피부가 무섭단 이유로 깃털을 길게 만들어 팔을 가렸다. 털색이 붉으락 푸르락하며, 날카로운 발톱이 엿보인다. '그냥 원래 잘하던 모습으로 있었어도 좋았을 거 같은데.' 그는 내심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선생은 나름 만족한 얼굴로 루드빅을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까지 안내했다. 단단한 발굽이 대리석 바닥과 닿는 소리가 복도를 채운다.
 
ㅤ 그들이 루드빅에게 전달한 내용은 간단했다. 보물 찾기를 할 것이다. 당신이 술래인 술래잡기도 같이 있다. 중간쯤에 신호를 주면 들어와서 아이들에게 겁을 주며 뛰어놀게 하라. 어느 정도 애들이 지친 기색이 보이면 노란색 구슬 목걸이를 한 선생님과 아이들이 와서 당신을 '해치울 것'이다. 죽은 척을 하면 다른 선생이 애들을 내보낼 테니 그때 나오면 된다. 그것이 전부였지만, 그가 아이들과 뛰어노는 모습은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어린아이였던 적이 없던 사람처럼 엉거주춤하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그는 '이제 알겠다.'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좀 더 활발하게 그에게서 도망치며 보물을 찾기 바빴다. 어색한 금색으로 칠해진 메달들이 뛰어다니는 아이의 손에서 반짝거렸다. 즐거운 듯 무서운 듯 알 수 없는 아이들의 비명 속에서 유일하게 한 아이가 루드빅 앞에 우뚝 서서 그 두 눈을 들여다봤다. 아직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얼굴 근육은 개나 고양이에게서 볼 법한 표정이다. 루드빅은 이 아이가 몇 살인지 모르겠다. 루드빅은 무릎을 약간 구부려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ㅤ "보물 찾으러 가야지, 잡아먹는다?"
 
ㅤ "저는 이미 찾았으니까 다른 애들이 찾아야 해요."
 
ㅤ "몇 개고 찾을 수 있을 텐데?"
 
ㅤ "찾으면 기쁘잖아요."
 
ㅤ 아이는 두려움 없이 말했다. 루드빅은 고개를 갸우뚱 비틀었다가, 도로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ㅤ "너는 날 안 무서워하는구나, 비결이 뭘까, 도련님?"
 
ㅤ "그야 아저씨는 가짜니까요."
 
ㅤ "가짜라."
 
ㅤ "엄마가 가짜랑 바보에 무서워할 이유는 없댔어요!"

 
ㅤ 한껏 소리를 높인 아이는 루드빅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재빨리 뒤돌아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도망쳤다. 곧 아흐라와 아흐라의 부대 역할을 맡은 선생 한 명과 아이들이 달려와, 그의 몸에 말랑말랑한 방망이를 휘두른다. 루드빅은 이때구나 싶어 어설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이들이 환호한다. 보육원 선생들이 박수를 치며 아이들을 어딘가로 인도한다. 그 선생 무리 중 한 명이 루드빅에게 와서는 박수를 치며 감사하단 말을 남긴다.
 
ㅤ 루드빅은 수업 중인 곳에서 아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뒤편에서 변신을 풀었다. 청바지를 입은 선생이 와서는 생수병을 건네었지만, 그는 됐다며 손을 가볍게 펴 거절했다. 사실 무척 목이 마르다. 얇은 벽 너머로 수업 소리가 들린다. "라크샤는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로⋯." 루드빅은 그런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구석에 놓인 거울을 보며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없나, 본인의 모습을 점검한다. "본디 신성하게 여겨지는 검은 닭의 모습이었으나⋯" 머리카락을 보던 중 그는 검은 머리카락 하나가 섞여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손가락에 둘둘 말고는 뽑아버린다. 뽑아버릴 필요는 없었지만, 그저 꼴 보기 싫었다. "아흐라는 라크샤를 본인의 피조물이니 아껴주었지만⋯." 루드빅은 뽑힌 검은 머리칼이 자기 손가락을 감아 얽매여 있는 것을 내려보았다. "라크샤는 아흐라가 칭송받는 것에 질투하여 그의 신도들을 먼저 잡아먹다가⋯." 그는 엄지와 검지를 비벼 머리카락을 바닥에 내던졌다. "아흐라가 목에 두르고 있던 황금 원판에 비친 본인의 괴물 같은 모습에 놀란 라크샤를 아흐라가 물리쳤습니다⋯." 루드빅은 괜히 자신의 뒷통수를 헝클었다. "그러자 라크샤는 본인의 팔을 시작해서…."

ㅤ 루드빅은 보육원에서 스스로를 쫓아내듯 나와버렸다.


#3
 
ㅤ 티아나의 핸드폰이 협탁 위에서 진동한다. 딱딱한 것끼리 부딪히며 나는 불쾌한 소리에 티아나는 눈이 떠졌다. 시간은 오전 9시를 약간 넘었다. 더듬더듬 핸드폰을 집어 들어 바라본 화면은 루드빅의 전화를 알려주고 있다. 티아나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ㅤ "여보세요."
 

ㅤ "… …."
 
ㅤ "여보세요? 루드빅 씨?"
 
ㅤ "아, 여보세요."
 
ㅤ 전화기 너머에서 잡음 섞인 한숨소리가 들린다. 안심이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ㅤ "아… 별게 아니라, 방 청소해도 되나 싶어서."
 
ㅤ 그런 걸 물어보실 줄은. 티아나는 내심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흔쾌히 "물론이죠. 감사해요."라는 말로 응한다. 전화기 너머로 루드빅이 웃는 소리가 들린다.

 
ㅤ "지금 뭐 해?"
 
ㅤ "일어났어요."
 
ㅤ "아, 미안. 방해했네."
 
ㅤ 말이 끝난 직후 침묵이 늘어진다.
 
ㅤ "아."
 
ㅤ 티아나는 거북한 기분이 들어서(어쩌면 그냥 이렇게 전화를 끊어버리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를 불러 세우듯 정적에 파고들었다. 대답은 없고, 그저 전화가 끊어지지 않은 상태로 조용하다. 1분도 되지 않아서 대답이 돌아온다. 그저 "으응?" 하고 앓듯이 내는 소리가 끝이었다.
 
ㅤ "잘 지내고 계시죠?"
 
ㅤ"못 지낼 건 없지? 너야말로?"
 
ㅤ "저도 잘 쉬고 있죠."
 
ㅤ "그럼 됐군."
 
ㅤ "…문자를 웬일로 안 보내셔서 한 번 물어본 거예요."
 
ㅤ "아? 아~. 그냥. 이틀 연속으로 일이 있어서 그랬어. 어차피 시답잖은 거 보내면 안 읽잖아."
 
ㅤ"안 읽는다고 안 보내실 건 아니잖아요." 티아나는 침대에 엎드려 베개를 끌어안고 얘기했다. 핸드폰 너머가 조용하다.

ㅤ"…심심해~." 앙탈 부리는 목소리로 루드빅이 말했다. 전화 너머 그는 지금 티아나의 방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있다. 오른손으로 전화를 들고, 왼손으로 무언가를 굴리며 만진다. 상앗빛의 작고 들쭉날쭉한….

ㅤ"혼자서도 잘 노시잖아요!"

ㅤ티아나가 성을 냈다. 루드빅이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티아나의 핸드폰에서 들린다. 직후,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 루드빅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곧 "네~!" 라고 멀찍이 대답하는 티아나의 목소리로 누군가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직감한다. 이제 슬슬 끊어야겠네.

ㅤ"부모님이 밥 먹으라고 하시네요."

ㅤ"응, 맛있게 먹어. 끊을게."

ㅤ예상보다 고분고분한 태도에 티아나는 잠깐 눈을 굴린다. 그러려니. 그러곤 역시 "네."라고 대답한다. 전화는 바로 끊겼다. 티아나는 핸드폰을 협탁에 도로 내려놓았다. 무언가 찜찜하다. 이상한 짓을 하고 계시진 않겠지? 방을 엄청 특이하게 꾸며놓고 청소 해놨다고 한다든가…. 방 구석구석 이상한 장식을 숨겨둔다든가…. 그냥 난장판이 된다든가…. 여러 시나리오를 생각해 본 티아나는, 이왕이면 이상한 장식을 숨긴 쪽이 찾는 재미는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했다.

ㅤ티아나는 루드빅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며, 이주하는 이유와, 부모님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한 적이 있다. 앞길을 통제하려고 안달이 난 타입의 부모는 아니었으니 '설득'을 목적으로 한 설명은 아니었다. 삶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가 거처를 옮긴 이유는 그저 '더 좋은 샘플을 얻을 수 있으며', '루드빅이 전적으로 살림을 맡아서', '개인적인 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퇴근이 그리 편리하진 않다. 마을에서 얼마 안 떨어진 숲이지만 그래도 숲은 숲. 쭉 가로질러 간다면 다른 마을이 나온다지만, 어지간해서는 숲 외곽에 있는 도로에서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이득.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비를 아끼면서 개인 공간이 늘어난다는 점이 이점이었다. 루드빅이 생떼를 쓰듯 오라고 한 것도 이유였지만.
ㅤ그렇지만 '동거인'인 루드빅은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직업인 '해결사'는 말하기 쉬웠다. 그러나 평소 무엇을 하며 지냈고, 어떻게 알게 된 사람인지는 말할 수 없었다. 걸러낸다. 걸러내고, 걸러내고, 걸러낸다. 거짓말도 섞을까.

ㅤ"샘플 구하는 의뢰를 맡기려다가 그냥 도와주신 후로 친해졌어요…! 요리하는 걸 좋아하셔서 식사에 초대 받다보니…. 자취할 곳 필요하면 오라고…."

ㅤ그렇게 틀린 말은 없다. 부모님은 그러려니하며 복잡하게 캐묻지 않는다. 말하고 싶으면 더 말하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ㅤ티아나는 아침 식사를 위해 본인의 방에서 테이블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의 부모 중 한 쪽이 넌지시 말한다. 아침부터 누구와 통화했느냐고. 티아나는 그저 그게 루드빅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쪽이 묻는다. 남자란 얘긴 없었다면서. 티아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의자에 앉았다. 거짓말이었지만, 또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기에, 티아나의 표정은 애매모호했다. 입이 가로로 길게 뻗으며 웃는 둥 마는 둥 하다. 곧 자기 앞에 내려놓아진 그릇을 보고는 "잘 먹겠습니다." 그리 말했다. 삶은 계란을 다진 고기로 감싼 후 가볍게 튀겨 만든 요리. 티아나는 나이프로 요리를 반 갈랐다. 그릇에 노른자가 흘러내린다.

ㅤ루드빅 씨는 밖에 드러내기 어려운 사람이란 말이지.

ㅤ내심 티아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ㅤ루드빅은 티아나의 방에서 깨진 거울과 갖은 잔해들을 깔끔히 치우고, 새 거울을 구해 세워두었다.

#4
 
ㅤ 오늘은 그에게도 별일 없는 휴일이다. 오래간만에 들린 곳은 카페. 뜨거운 블랙커피를 하나 시켜놓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디저트도 시키지 않았다. 그냥 시간을 버리는 것이다. 유리벽을 사이에 하나 두고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거나 관찰한다. 지겹다. 지겹다가도 볼만하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볼 수 있는 건 귀하다. 그러니 그냥 집에서 뒹굴고 있는 연예인 따위가 방송되는 것이 인기를 사는 것이겠지. 배울 것이 하나 없는 겉치레에 사실은 대본대로 굴러가는 것인데도 말이야. 생긴 것만 괜찮다면 조금 추잡하게 굴어도 애교로 봐 준다고. 루드빅은 그렇게 생각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간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들개도 하나 지나갔다. 커피는 다 식었고, 아직도 해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루드빅은 계속 의자에 앉아 차가울 정도로 식은 커피를 마시는 척하고 있다.

ㅤ 조금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서 시끄러울 정도로 떠드는 청소년들이 있다. 다른 테이블에는 귀를 꽉 막고 노트북이니 종이책이니 여러 네모나고 평평한 것들을 펼쳐놓은 부류가 있었고, 어디는 오랜만에 만난 모습인지 도란도란 이야기하거나, 어딘 그저 루드빅처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차를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루드빅은 볼 게 없어 커피잔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머그컵 속 검게 들어차 있는 표면에 그의 얼굴이 엷게 비친다.

ㅤ 오래전부터 쭉 혼자 잘 지냈는데,
이번에는 왜 느낌이 다르지.

ㅤ 아주 건너편 테이블에서 한 말이 그의 귀에 꽂혔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의 뒤통수가 보인다. 검은 머리였다…. 루드빅은 살짝 몸을 틀어 그 사람의 정면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보려 했다. 약간의 반사만 있다면…,

ㅤ 그 순간 어디에선가 강렬한 섬광이 눈을 찌른다. 루드빅은 목소리는 내지 않고 고개를 재빨리 돌렸다. 젊은 애들이 있는 테이블 쪽이었다. 그 무리 중 하나가 들고 있는 손거울이 번쩍거린다. 햇빛인지 조명인지 모를 빛을 반사하고 있다. 루드빅은 손바닥을 펴서 가볍게 빛을 가렸다. 손거울을 든 학생 앞에 앉은 학생이 그것을 보고는 넌지시 말했다. "야! 조심해! 저 아저씨 눈에 쏘고 있잖아!" 손거울을 든 학생이 다급히 뒤돌아보더니, 고개를 까딱한다. 루드빅은 그것을 곁눈질로 보다가, 고개를 까딱하고는 도로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린다. 조금 전의 뒤통수는 그 테이블에 없다…. 루드빅은 식은 커피를 다 마셔버린다. 밑에 가라앉은 시럽이 괜히 그의 목을 갑갑하게 한다. 그는 테이블에 있던 물통을 잡았다가, 휙 하고 허망하게 들어올려지는 것을 보곤 기분이 망가졌다. 비어있잖아….

ㅤ "아, 저기요." 그는 약간 손을 들어 지나가던 직원을 불렀다.

ㅤ "네~ 필요한 거 있으실까요?" 직원은 웃는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ㅤ "여기 테이블에,"

ㅤ 순간 그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루드빅의 기분도 같이 갈라져버렸다. 카운터 직원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루드빅은 말을 잠시 멈췄다가 괜히 기침을 한다. 고기로 된 빨대 주제에…. 그런 식으로 제 목을 한 번 탓했다가, 그는 말을 이었다.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ㅤ "…테이블에 물이 없어서요."

ㅤ "아, 채워두겠습니다. 따로 필요하신 건요?"

ㅤ 없어요. 카운터의 직원이 그 말에 끄덕인다. 곧 기다리니 다른 직원이 얼음이 가득 찬 유리잔 하나와 또 다른 물통을 가져와 테이블에 두었다. 필요한 건 없다고 했었는데. 창밖을 바라본다. 거리에 사람이 안 보인다. 그는 조금 전에 빛을 맞은 오른쪽 눈이 아직 시큰시큰하다고 생각한다. 창문 밖보다 안이 조금 더 밝은 탓에 그의 얼굴이 유리에 반사된다. 반사상을 루드빅 역시 눈치챈다. 그는 살짝 고개를 뒤로 무른다. 허연 탓에 잘만 반사된다. 노란색 눈동자가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그를 훑어 본다.

ㅤ어라….

ㅤ마치 불만이 있다는 듯 얼굴에 멈춰 서서 노려보는 노란 눈동자가 둘 있다.


#5

ㅤ"루드빅 씨?"

ㅤ"심심해서 전화했지."

ㅤ"매번 심심하세요?"

ㅤ"당연하지. 일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ㅤ"하긴, 그러시죠. 저번 일은 잘 끝내셨어요?"

ㅤ"물론이지."

ㅤ티아나는 구태여 그들의 얘기를 꺼내지 않기로 결정한다.

ㅤ"지금은 뭐 하세요?"

ㅤ"너야말로?"

ㅤ"저는 집에서 뒹굴고 있는데요."

ㅤ"그런 건 우리집에서도 할 수 있잖아."

ㅤ"부모님 집에서도 하고 싶었어요."

ㅤ"그래~. 아, 맞다."

ㅤ"으응?"

ㅤ"이번에 산 계란, 완전 색이 다 달라."

ㅤ"우와, 섞어 키우나 보네요."

ㅤ"그런가. 먹는 것도 자유롭나? 껍데기도, 노른자도 색이 다 달라."

ㅤ"저는 개인적으로 주황색에 가까운 노른자가 마음에 들어요."

ㅤ"…그럼 노란색이 아니잖아?"

ㅤ"그렇지만 더 선명해서 좋잖아요?"

ㅤ"으음, 그럼 '노른'자가 아닌데. 그렇구나. 하긴 더 맛있어 보이지."

ㅤ"루드빅 씨는 색은 신경 안 쓰이세요?"

ㅤ"응, 맛은 거의 같아. 아니, 어쩌면 정말 같을지도. 미각이 변했지만 뭔가 세세하게 느낄 거까진 없는 거 같은데."

ㅤ"공허로도 그래요?"

ㅤ"공허한테 계란을 먹여 본 적은 없는걸. 펫도 아니고. 변신하고 싶은 거나 쓸만한 물건만 먹여봤다고."

ㅤ"창고군요…."

ㅤ"난 먹는 것에 따라 변할 수 있으니까."

ㅤ"달걀이랑 같네요."

ㅤ"웃겨, 내가 노른자란 말이야?"

ㅤ"사실 모든 생물은 달걀과 닮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ㅤ"무슨 의미?"

ㅤ"먹는 것이 바뀌면 영양성분이 바뀌니까 내용물이 약간 다른 모습이고. 껍데기는 낳아준 닭을 따라가고…."

ㅤ"너답다."

ㅤ"루드빅 씨도 달걀같은 거네요."

ㅤ"결론이 빠른 걸. 그치만 달걀은 깨지면 다시 달걀이 안 된다고."

ㅤ"무슨 말이에요?"

ㅤ"그니까, 달걀은 흠이 생기거나 깨지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못 돌아간다고."

ㅤ"루드빅 씨는 돌아갈 수 있단 얘기예요?"

ㅤ"물론이지, 그렇게 험한 일 하는데 내 몸에 생채기 있는 거 본 적 있어?"

ㅤ"…."

ㅤ"없잖아, 그치?"

ㅤ"옷을 복구하시는 거는 이해가 되는데…."

ㅤ"응? 왜."

ㅤ"신체는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ㅤ"그야 공허가,"

ㅤ"먹은 걸로만 변신하실 수 있잖아요."

ㅤ"…."

ㅤ"으응? 예외가 있나요?"

ㅤ"그게, 어라?"

ㅤ"루드빅 씨?"

ㅤ"…."

ㅤ"루드빅 씨, 듣고 계세요?"

ㅤ"…끊을게."

ㅤ"네? 잠깐만요!"

ㅤ"끊을래. 끊을 거야. 손 없어. 그쪽에서 끊어."

ㅤ"손 많으시잖아요."

ㅤ"몰라, 아니야. 없어. 내 손 아닌 걸. 알잖아. 끊어."

ㅤ티아나는 그를 여러번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

 
#6

ㅤ오른손은 숟가락을 비스듬히 엎드리게 했다. 흰자와 눈꺼풀 사이에 파고들고는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파내어 간다. 아직 반을 채 그리기 못했다. 비명은 나오지 않는다. 그의 머리 안에서 계속해서 끊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육이 끊어지는 소리일 것이다. 차가운 금속이 결막낭을 쓰다듬으며 점차 뜨겁게 체온으로 달궈진다. 오른손은 멈추지 않는다. 왼손으로 짓눌러도 멈추지 않는다. 왼손이 오른손을 할퀴고 긁어도 일체 멈추지 않는다. 느긋하게 반원을 그렸다. 왼눈이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다. 부채꼴쯤을 그렸다. 입술이 달싹 거린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어, 정말 싫어서⋯. 그렇게 말하려는 듯 오른손이 일체 멈춤 없이 원을 그려냈다. 엎드린 숟가락은 곧 퍼올리려는 듯 점점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얼굴을 적시는 것이 맑은지 붉었는지 알 수 없다.

ㅤ그는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오른눈의 공백을 왼 손가락으로 되짚어보고 있다. 손가락이 안으로 향한다. 움푹하고 축축한 혓바닥처럼 손가락을 가득 머금었다가 도로 뱉어낸다. 뜨겁다. 일말 보이는 것 없이 어둠도 없이 쨍한 빛도 없이 뒤통수가 바라보는 것처럼 오른쪽엔 그저 한없이 공백이. 그 공백 너머에서 오른손이 기어 오더니, 왼눈을 더듬는다. 아직 남아있잖아⋯. 그의 표정은 일말 변화가 없다. 남은 왼눈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오른손은 고민했다.


ㅤ아직 눈알은 눈알 뒤에 네 개는 더 남아있을 것이다. 누가 뭐래? 하하하⋯. 따지듯이 묻고 싶어도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몸을 일으켰다. 보지 않고도 볼 수 있다. 그는 내팽개쳐진 동그란 눈알을 집어 들어, 손 위에서 짓이겼다. 그러곤 입으로 가져갔다. 누군가 해줬던 말 같은 맛이 난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정말, 정말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너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구나. 얼굴에 남은 핏자국에 맑은 통로가 생겨서 그 길로 물방울이 계속 흘러간다. 왼눈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듯 얼굴에서 싱크대로 추락하여, 스스로 배수구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ㅤ전화를 알리는 소리.
 
ㅤ"여보세요?"
 
ㅤ"아, 응. 티아나 양?"
 
ㅤ"잘 지내고 계시죠?!"
 
ㅤ"왜 그런 톤이야. 그야 잘 지내지. 아 맞아, 언제쯤 와?"
 
ㅤ"마침 그 얘길 해드리려고 했어요. 연구소에서 숲 근처에서 나온 생물에 대해서———."

ㅤ오른손을 움직여 그는 싱크대의 수도꼭지를 재꼈다. 차가운 물이 스테인리스를 두들긴다. 싱크대는 한참 물을 흘려보냈다.
 
ㅤ"라, 서. 니까, 여서요."

ㅤ왼발이 바닥에 놓인 버튼을 누른다. 딱, 소리가 나자 모터가 회전하며 배수구에 걸려있던 것을 갈아내기 시작한다. 부글거리는 소리까지 내며 모든 걸 갈아낸다. 액체는 모두 흘러가서 하나가 될 거고, 건더기가 남아버린다면 통 안에 한데 모여 그저 그런 이물질이 될 것이다. 물은 나선형이 되어 궤적조차 모르도록 전부 씻어낸다. 배수구에서 배곯는 소리가 난다. 물이 아무리 흘러 들어가도 밑을 채울 줄 모르고 전부 흘려보낸다.
 
ㅤ"응."
 
ㅤ"으응. 그래."
 
ㅤ"아냐. 하하."
 
ㅤ"그래. 편하게 해."
 
ㅤ전화가 끊긴다.


Gladly

ㅤ"다녀왔어요~."

ㅤ티아나는 본가에서 따뜻한 휴가를 마치고 숲속에 놓인 저택으로 돌아왔다. 어째선지 더 무거워진 캐리어를 질질 끌고 힘겹게 문턱을 넘어, 신발 밑창을 탈탈 털며 들어왔다. 묘하게 불이 어두워 가만 보니, 거실 조명을 절반 넘게 꺼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혼자 계시니까 그랬나 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는 캐리어를 현관에 두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ㅤ"루드빅 씨, 저 왔어요~."

ㅤ대답이 없다. 인기척이 있는 곳으로 티아나는 향한다. 사각사각사각사각하고 껍질을 다듬는 소리 같았다. 예상한 위치는 주방이었다. 그리고 역시 주방 싱크대 앞에 서있는 그의 뒷모습이 티아나의 눈에 들어왔다.

ㅤ"루드빅 씨?"

ㅤ"…."

ㅤ"루드빅 씨!" 티아나가 당황하여 크게 소리쳤다. 그에 놀란 듯이, 아니, 생각보다 태연하게 루드빅이 뒤돌았다.

ㅤ"응?"

ㅤ"뭐 하고 계셨어요? 들어왔는데 눈치도 못 채시고."

ㅤ"어? 뭐야~ 왔구나? 연락을 하지. 마중 가려 했는데."

ㅤ티아나는 차마 '혹시 하필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실까 봐 무서워서 못 했어요.'라고 답하지 못하고, 부모님이 차로 바래다주셨으니 괜찮다는 거짓말을 했다. (실제로는 대중교통을 몇 차례나 갈아타며 왔다.) 외투를 벗어 소파 등받이에 얹어두고, 도로 루드빅이 있는 주방 쪽으로 향했다. 풋내가 난다. 껍질이 도려내진 감자가 몇 개 놓여있다.

ㅤ"알리고(Aligot) 하려고. 밥 안 먹었지?"
 
ㅤ"앗."
 
ㅤ"⋯먹고 왔구나?"
 
ㅤ"아."
 
ㅤ"안 먹을 거야?"
 
ㅤ"그, 음." 티아나는 거절하기 어려운 나머지, 알겠다고 답했다. 루드빅은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짐을 정리하고 오라며 티아나의 등을 떠민다. 티아나는 주방에서 살살 밀려나더니, 이내 자기 걸음으로 캐리어까지 걸어갔다.

ㅤ짐을 정리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 옷이었으며, 세탁은 이미 마친 것들이 가득했다. 나머지는 집에 두고 온 책이나 사무용품. 짐 정리를 끝내고 손을 깨끗하게 씻은 티아나는 식탁에 앉았다. 여러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 신선한 채소로 만든 샐러드와 알리고를 곁들여 내온 구운 고기. 세로로 반 자른 삶은 계란….

ㅤ"어라, 루드빅 씨."

ㅤ"응?"

ㅤ"이 달걀, 평소보다 노른자 색이 진하네요."

ㅤ티아나는 불현듯 루드빅의 눈동자와 노른자의 색이 같다고 느낀다.

ㅤ"바꿨어."

ㅤ때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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